
천인안작가
히든아티스트
작가는 ‘재봉틀로 풍경을 그리는 화가’로 불린다. 말 그대로 원단에 재봉틀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겐 재봉틀이 회화에서의 캔버스이자 붓이며 갖가지 ‘재봉실’은 회화에서의 물감과 동일한 기능과 역할을 한다. 이런 예술분야를 소잉 아트(sewing art)라고 한다. 판화로 따지자면 까다롭기로 유명한 메조틴트(mezzotint)의 그것과 흡사하다. 명암의 해조(諧調)에 주력하는 동판작업이 메조틴트인 것처럼 천인안 작업 또한 낱낱의 실을 이용해 미묘한 색조를 표현한다. 작가의 주제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상의 장면들이 구상으로 구현된다. 그의 작화는 사실상 “간격 좁은 담과 벽들이 들어서 있는 다양한 사람 관계가 존재하는 "공간”에 방점을 둔다. 엄밀히 말해 ‘관념적 공간’과 ‘재현 공간’이다. 이 공간은 틀의 경계에 의해 형성된 틈의 공간이다. 작가는 그 재현 공간과 공간 사이에 놓인 틈에 예민한 감성과 섬세한 재봉틀 작업으로 퇴색해가는 것들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심는다. 작품을 처음 접한 이들은 ‘외형의 풍경’에 시선을 둔다. 이는 의식 속 사물과 질서에 대한 믿음이자, 서양 고전미학의 신념에 따른다. 고전미학은 예술에 자연의 모방을 요청한다. 그것들은 그 형태의 명료함과 일의적 질서 속에서 풍경다워야 할 뿐 그 이외의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양미학은 겉보단 속, 외형보다 내적인 것에 방점을 둔다. 작가 또한 일상의 풍경에 깃든 ‘정서’와 ‘감성’을 우선한다. 따라서 무채색의 조형은 기억자체이면서 기억을 더듬어 표상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실제로 작가는 천에 다른 색조의 실로 박음질 하고 재봉틀을 통해 톤(tone)을 조절하는데, 그 색조를 균형에 맞게 맞추어나감에 따라 조형요소로서 풍부한 계조(階調)를 생성할 수 있고 작품 전반에 드리운 고즈넉하며 고요한 분위기를 살리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표현을 통해 작가는 일상이라는 평범한 이미지를 시공 아래 희석된 것들을 가시적으로 들춰내며, 교류되는 세월과의 간극, 기억과 실체라는 양자적 관념 속에 존재해온 이미지로 재탄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