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OOM

김은정B작가

평면

안녕하세요. 한국화 작가로 활동하는 김은정입니다. 저는 2010년부터 한국화, 그 중에서도 궁중회화, 진채에 초점을 맞춰 제작 기법연구를 진행해왔습니다. 20대에는 내 이야기를 작품에 풀어내기에 스스로 시기상조라고 판단하여 옛 그림 모사를 통한 완벽한 기술 습득만을 고집했습니다.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어느 때에는 전통회화를 이어간다는 사명감에, 어느 때에는 단순히 먹선을 긋는 그 행위의 즐거움에 빠져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서른살이 되어서야 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상실과 생명이라는 주제로 자연을 다루기 위해 나에게 익숙한 <동궐도(東闕圖)> 기법을 차용했습니다. 동궐도의 풍경을 오려 붙이듯 재구성하여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시점을 여러 차원으로 분리하여 만든 공간들은 의도한 화면이었지만 어느 순간 저에게는 저절로 본연의 형태를 찾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사회화’라는 명분으로 ‘도시화’에 강제 적응 기간을 거쳤습니다. 도시에서 인간에게 유익하다고 규정한 것들에는 늘 인류애의 상실과 함께 자연의 상실이 동반됩니다. 어쩌면 인간은 도시 안에서 상실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는 소모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런지요. 도시화, 기계, 문명, 그런 것들이 갖춰져 있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의 삶은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새것을 입고 먹고 쓰며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나의 영혼은 여전히 어린시절 시골집 밤나무 아래에 머물러 있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