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OOM

장애란작가

히든아티스트

유년의 상처를 주제로 작업해오고 있다. 어린 시절 겪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작업의 동기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쓰는데 그 하나는 아동화적 경향의 드로잉을 하는 것이다. 다시 아이가 되어 봄으로써 내 유년시절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이다. 불행했던 유년을 행복함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그림 속에 아이의 유토피아를 구현해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한다. 두 번째는 낙서적드로잉이다. 이는 추상표현주의와도 많은 관련이 있다. 어린 시절 겪은 폭력의 공포에서 나는 늘 떨고 있었고 트집을 잡히지 않기 위해 늘 몸사리고 눈치 보며 살았다. 그런데 낙서하는 순간은 어떤가. 낙서 잘못했다고 감시당하거나 혼나는 일이 없다. 나에게 있어서 낙서는 억압에 대한 자유에의 의지이다. 낙서하는 순간은 정말 자유롭다. 표현주의적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3,4살 아이들의 낙서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낙서적 드로잉을 보라. 얼마나 자유로운지. 아이들의 선과 색채를 보면 놀랄 만큼 자연스럽고 에너지가 넘치고, 신선하다. 똑같이 그리려 하지도 않고 완성에의 집착도 없다. 낙서 같은 선들, 자유분방한 색칠, 넘치는 에너지를 그림에 담고 싶다. 잘 그리기 보다는 재밌는 세계를 담고 싶다. 최근 낙서적 붓질을 하는데 100호에 액션페인팅식의로 힘차게 붓질을 하면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격렬한 붓질은 어린 시절 받은 신체적 정서적 학대에 대한 통렬한 복수랄까. 한마디로 비폭력적인 나만의 복수이고 이를 통해 내 내면의 한을 발산시킴으로써 유년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이다. 추상표현주의의 브러시 스트로크나 붓터치를 통해 억압되어 있던 슬픔과 분노를 표현한다. 표현주의적 경향(낙서적 경향)은 억압하는 이들에 대한 저항정신이다. 이러한 저항을 통해 자유에의 의지를 담고 있다. 구상적 작업에서 추상으로 가고 있는 중인데 추상 작업 속에서 더 많은 형태들과 의미를 발견한다. 추상표현주의는 주로 사이 톰블리나 조안 미첼 등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림 속에 글자를 조형적 언어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영어 대신에 한시를 한지에 써서 꼴라주해 보았다. 그 외에 색동저고리나 민화, 신라나 백제의 기와 문양, 옛날 베개의 자수문양 등을 차용해서 추상표현주의와 결합시키기도 한다. 구불구불한 선들은 상모돌리기의 형태와 맞물린다.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로운 표현에 우리 것을 결합시켰다. 추상표현주의의 서양적인 면과 한시나 색동, 민화와의 동양적인 면의 결합이 신선한 느낌을 준다. 지금까지 나는 전시 제목이 유년의 뜰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자그마한 뜰이 있었는데 라일락나무가 있었다. 새소리도 들렸다. 5월이면 라일락 향기로 뜰이 화사해졌다. 극악한 유년에도 나에게 라일락이 있는 뜰은 위안이었다. 누구나 유년을 지나왔고 성인이 되었다. 행복한 유년이든 불행한 유년이든 마음 속 어딘가에 자기만의 유년의 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했던 이는 행복함을 기억하기를 불행했던 이들은 나의 유년의 뜰에서 마음의 위안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를 바란다. 뜰에는 바람이 살랑 불고 새가 지저귀고 라일락이 피어 보라색 향기를 가득 흩날리고 있을 것이다. ​ ​

태어난 새는 날아야 한다
2022-08-22

페친이신 안택근 선생님이 <태어난 새는 날아야 한다>라는 시집을 선물받으셨다 한다.안선생님은 내가 31살에 미술을 처음 시작할때 학원 원장님이셨다~ㅎㅎ

정확히는 모르지만 안선생님도 통증으로 끙끙 앓으시나보다. 동지애가 느껴진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시집의 제목때문이다.
30년간 섬유근육통의 통증으로 시달리던 나는 나름 고통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왔다. 2020년부터 갑자기 몸져 누웠다. 원래 아팠지만 그래도 매년 개인전 열고 어떤 때는 한 해에 초대전을 4번 열기도 히는 등 정말 아픈 몸으로 미친듯 산거 같다. 그런 내가 2020년 1월부터 두달 동안 침대에 붙박이처럼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하루에 만보씩 걷던것도 다 때려치고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갱년기와 더불어 번아웃이 온것이다. 나는 32에 미대를 갔고 38에 대학원을 마쳤고 수년을 아파 제대로 작가생활을 시작한건 47살부터였다. 그래서 정말 미친듯 그렸던거 같다. 경쟁상대?는 이제 갓졸업한 스물대여섯의 학생들 아닌가.마음이 조급했다. 내 나이는 사실 중견작가가 되어 있어야할 나이인데
47살에 작가생활을 시작했으니 나는 뭔가 쫓기는 기분으로 작업을 해야했다. 빨리 화단에 자리를 잡아야되는데....
그러다 아픈 몸은 견디지 못하고 뻗어버린것이었다.
52살 되기전까지 6년동안 아마 개인전을 13번정도 했으니 너무 혹사했다. 번아웃이 오고 나는 정신을 놓았다. 손가락 까딱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렸나?
나는 무엇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걸까.
나는 내가 분명히 남다르고 개성 있는 화가라고 생각했지만 인기있는 작가도 아니었고 비평가들이 주목하는 화가도 아니었다.
내가 뛰어온 6년은 아무것도 아니었나.
뒷바라지 해준 남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
좋은 피드백도 받지못한 나.
나는 침몰하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날 힘도 없엇고 아침이 오는게 싫었다. 그냥 사라지고 싶었다. 늘 누워서 시름시름 앓으며
지병인 섬유근육통의 통증을 견뎌내는것만이 그 해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마 21년 봄이었나?
어느 방송사에서 <나빌레라>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다.
70대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평생 꿈이었던 발레리노가 되는 꿈에 도전하는 이야기였다.
젊은 탤런트 송강이 스승역을 70대의 박인환 할아버지가 발레리노의 꿈을 펼치는 할아버지로 분했다. 드라마 속에서 송강이 박인환에게 이렇게 늙고 힘없는 몸으로 왜 발레리노가 되고싶으냐고 묻는다.
박인환은 말한다.
나도 한번은 날아오르고싶어서.

드라마를 보고 기운을 냈다. 늪에서 한발 한발 발걸음을 띄우게 해준건 바로 이 대사였다.
나도 한 번은 날아 오르고 싶었다. 작년53살이었지만
게다가 30년지기 병인 섬유근육통 을 앓고 있는 몸이지만.
나도 날아보고 싶었다.
그림 속에서 자유롭게.
숲속의 새와같이 기쁘게.
도시의 새도 새장의 새도 감옥의 새도 아닌.
숲 속의 새.
얼마나 기쁜가.

태어난 새는 날아야 한다라는 시 제목에 문득 떠오른 나의 슬럼프와 슬픔을 적어본다.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 날아올라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날은 온다고
말하고 싶은 밤이다.

brav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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