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OOM

박나회작가

평면

1. 어느 폐허, 잊힌 재단 같은 낡고 버려진 불안한 일상 속의 뒤란에서 보게 되는 조각들을 그린다. 가장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경험을 통해 우리의 일상은 평이한 순간들의 반복이지만 그 평이한 순간의 뒤에는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소중한 이의 죽음이란 우리의 감정을 가장 극대화한다. 곁에 있던 사람을 잃는 것은 우리를 뒤흔드는 감정을 겪게 하고 일상을 망가트린다. 이때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정물(情物)들은 떠나간 이와의 많은 기억들과 의미를 담고 있어 마치 떠나간 이들을 가리키는 것만 같아 남겨진 이들의 마음에 흠집을 내며 일상을 뒤흔든다. 일상을 유지하고자 감정에서 도망치고 멀어져도 결국 죽음의 그늘 안에 있다. 결국 삶 속에 죽음이 항상 곁에 있다는, 저명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그렇기에 일상의 순간마다 종종 죽음이 불쑥 찾아와 잊히지 않는 순간들을 정물들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다. 어딘가 익숙하지만 이질감이 드는 정물들, 버려지고, 썩고 메마른 잔해들을 통해 일상 속 죽음에 대한 불안함과 그리움을 표현하며 삶 속에서 죽음이 얼마나 강렬하게 그림자를 남기는지를, 모든 삶의 조각들은 죽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그런 인생의 질기고 삼키기 힘든 순간들을 정물을 통해 그린다. 2. 작품에 주요 소재들은 정물이다. 주로 일상에서 볼 수 있지만 어딘가 부서져 있거나 썩어 있거나, 혹은 잔해만 남은 것들을 모아 린넨 위에 배치했다. 이러한 정물들을 통해 시간도 지우지 못하는 통증과 후유증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업에 주 재료들은 린넨과 석영가루와 동양화의 전통재료인 아교와 호분, 그리고 먹이다. 린넨 위에 석영가루를 전통재료인 아교와 호분을 섞어 얇게 발라 풀 먹인 수의처럼 만들고 난 뒤 먹으로 그림을 그린다. 지워지지 않고 고쳐지기 힘든 먹으로 그린 정물들은 섞고 메마른 형태들이지만 죽음과 이별은 인생의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 이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먹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