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ROOM

류은선작가

영아티스트

동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하며 전통 매체인 한지와 먹을 중심으로 회화 작업을 꾸준히 지속해 왔습니다. 전공 과정에서 익숙해진 수묵의 농담, 여백은 제 작업에서 단순한 기법을 넘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적, 철학적 태도로 자리 잡았습니다. 제 작업의 출발점은 아이와 천사 날개와 같은 순수의 상징이었습니다. 저는 이들이 단순히 본질적인 순수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과 제도, 문화적 맥락 속에서 연출된 이미지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2019년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던 ‘주저앉아 우는 아이’가 한동안 뇌리에 박혔고, 그 이후로 아이를 ‘독립된 자아를 지닌 존재’로 인식해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지 위에 먹을 여러 번 선염하여 아이의 격분한 감정을 마치 아토피가 걸린 듯한 피부로 표현하거나, 아이가 귀·입·눈을 막는 형상들을 통해 순수와 위장의 양가성을 탐구해 왔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연출된 순수’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고, 순수가 어떻게 이미지로 소비되고 사회적 장치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작은 사람, 큰 사람》(2025, 스타필드 하남)에서는 아이를 통해 성장과 선택의 순간을 그리면서, 관객에게 순수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과정을 드러냈습니다. 또 다른 연작에서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천사 날개를 변형 석회벽에 수묵으로 묘사하며, 그것이 환상적이지만 동시에 부자연스럽게 연출된 이미지임을 강조했습니다. 2025년 서울 종로구 자문밖 아트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저는 작업의 방향의 확장을 시도했습니다. 이전까지의 평면 회화 작업에서 벗어나 석회벽 작업, 변형 캔버스, 설치적 구도를 시도하며, 순수의 이미지가 형성되는 ‘무대 장치’를 입체적으로 형상화 했습니다. 손의 형상을 겹쳐 만든 구름의 실루엣, 산처럼 솟아 무언가를 떠받치는 손들의 군집, 달 모양의 변형 캔버스에 그린 연꽃 봉오리 등은 모두 순수의 상징을 낯설게 변형한 사례입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순수의 이미지를 ‘그 자체’로 재현하기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연출되고 허상으로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전통 수묵의 물성과 현대적 감각을 결합해, ‘연출된 순수’가 갖는 모순과 이면을 심화 탐구하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장에서 단순한 감정의 기록을 넘어서, 순수라는 개념의 사회적 소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