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린이’도 쉽게 하는 아트테크…MZ세대 공동 구매 급증
‘미린이’도 쉽게 하는 아트테크…MZ세대 공동 구매 급증 20대 직장인 최창민 씨는 요즘 주말이면 갤러리 투어에 열심이다. 어떤 작품이 유행하는지, 특히 각 갤러리마다 제일 잘 팔리는 작가와 작품은 뭔지 꼼꼼히 살핀다. 그리고 이 작품이 서울옥션 등 주류 옥션 혹은 미술 투자 플랫폼 ‘테사’ 등에서 거래가 됐는지도 따져본다. 그림 하나에 1억원 이상 하는 작품도 투자 대상에 올려놓는다. 목돈이 없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끼리 돈을 모아 소액 투자를 할 수 있게 하는 모바일 앱도 속속 등장해 구입이 예전처럼 어렵지는 않다. 아트테크가 뜬다. 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를 뜻하는 아트테크는 최근 IT 기술의 발달로 2030세대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변이 넓어지면서 거래액이 급증하는 등 관련 시장도 쑥쑥 성장하고 있다. 서울옥션은 연간 4회로 운영하던 정기 경매를 올해부터는 5회로 늘리기로 했을 정도다. 더불어 블록체인, NFT(대체 불가능 토큰) 등 신개념 투자 방법도 늘어났다. 아트테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또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 피카소 전시 구름 관중…2030 북적북적미술품 ‘공동 구매’…MZ세대 투자 ‘급증’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이 화제다. 휴일에는 지하층까지 오래 줄을 기다려야 겨우 볼 수 있고 주중에도 만만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전시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년)의 작품 110점을 볼 수 있는 국내 피카소전 사상 최대 규모다. 전시회 주최 측은 “2030세대의 미술관 나들이가 뚜렷하다. 교양 차원에서 접근하기도 하지만 질문하는 것을 보면 그림 가격, 국제 옥션 낙찰가 등 재테크 관련 내용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최근 미술 시장의 주요한 특징 중 한 가지는 아트테크의 대중화다. 당장 주요 옥션, 아트페어(박람회) 등에 초보 투자자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최근 새로운 젊은 고객이 상당히 많이 방문하고 있다. 특히 벤처,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대규모로 매각한 기업가들의 방문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들 중 일부는 단숨에 ‘큰손’으로 떠오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IT 기술 고도화로 진입장벽을 낮춘 것도 컸다. 지난해 예술경영지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미술품 경매 시장 매출에서 온라인 경매 시장은 2018년 상반기 105억원대였던 것이 2년 만인 지난해에는 123억원대로 늘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서울옥션을 예로 들면 지난해 해외 전시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온라인 경매 성장세가 뚜렷하다. 매년 20~25회 정도 이뤄지던 것이 올해는 40회 이상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평균 낙찰총액 규모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시장의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금융 업계에서도 이 시장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신한카드는 최근 ‘아트(Art)’ 사내벤처를 결성, ‘아트페어’를 개최하기로 했다. 신한카드가 스폰서십을 맺고 있는 한남동 소재 블루스퀘어 네모홀에서 6월에 3차례 진행하는 이 행사는 신진 작가·갤러리(화랑)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신한카드 브랜드 파워를 활용한 판매에도 나설 예정. 향후 소장품 직거래, 소장품·전시 정보를 공유하고 아트 플렉스 공간을 개설하는 등 관련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SK텔레콤과 하나금융지주가 합작 설립한 금융 플랫폼 ‘핀크’도 스타트업과 손잡고 ‘미술품 공동 구매’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8년 출범한 미술품 공동 구매 플랫폼 ‘아트투게더’는 소액 투자자를 모아 고가 미술품을 사서 차익을 남기고 되파는 크라우드펀딩 형태의 스타트업. 핀크는 아트투게더와 손잡고 지난해 5월부터 소액으로 펀딩에 참여할 수 있게 진입장벽을 낮췄다. 최소 펀딩 단위는 1주로 가격은 1만원에 공동 구매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카이로스인베스트먼트도 갤러리와 손잡고 미술품 투자 전문 펀드를 조성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블록체인 기술 발달에 따라 단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을 NFT 형태로 만들어 거래하기도 한다. MZ세대 ‘큰손’ 부상아트테크의 미래 밝아 MZ세대 유입으로 이 시장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세계 최대 규모 아트페어 주관사인 스위스 아트바젤은 ‘2021 미술 시장 보고서’에서 10개국 고액 자산가 컬렉터 2569명 중 52%가 2030세대라고 밝혔다. ‘오픈갤러리’ 등 미술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한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미술 시장 문턱이 점점 낮아지고 있고 젊은 고객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종전 갤러리, 경매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미술 거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아트테크에도 유의할 사안은 많다. ‘가짜 그림’ 즉 위작 논란은 늘 시장에서 변수다. 2011년 11월, 165년 역사를 자랑하던 미국 뉴욕의 유명 화랑 노들러 갤러리(Knoedler Gallery)가 미국 사상 최대 미술품 사기에 휘말려 문을 닫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이우환, 천경자 관련 작품은 위작 논란이 항상 따라다닌다. 아트테크도 결국 재테크의 일종인 만큼 ‘시장성’ ‘환금성’ 등도 철저히 따져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미술 시장이 뜬다기에 신진 작가 작품을 무턱대고 샀다가 되팔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일도 속출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기술 영역인 NFT 관련 작품 구매에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여자친구이자 캐나다 유명 가수 그라임스의 NFT 작품이 65억원에 팔리며 큰 관심을 받았지만 자전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박수호·정다운·나건웅 기자]
2021.05.21
-
세계 3대 미술장터 ‘프리즈’ 내년부터 서울에도 펼친다
세계 3대 미술장터 ‘프리즈’ 내년부터 서울에도 펼친다 한국화랑협회-영국 프리즈페어 협약2022년 9월 한국 ‘키아프'와 공동개최 지난 2019년 한국화랑협회 주최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 전시장의 모습. 한국화랑협회 제공지난 2019년 영국의 프리즈 런던 전시장. 한국화랑협회 제공 한국화랑협회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영국의 미술품 장터(아트페어) ‘프리즈’(FRIEZE)의 아시아권 행사를 서울에 유치했다고 18일 공식발표했다. 황달성 회장은 이날 협회의 보도자료를 통해 내년 9월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관에서 영국 프리즈 페어와 공동으로 국제장터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KIAF)’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공동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최근 프리즈 이사회 관계자들과 모든 계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초대형 아트페어를 추진하기 위한 협의를 마쳤다고 덧붙였다. 프리즈는 2003년 런던에서 현대미술잡지 <프리즈>의 발행인인 어맨다 샤프와 매슈 슬로토버가 창설했다. 스위스 바젤에 본거지를 둔 세계 최대 미술품 장터인 아트바젤, 프랑스 파리의 피아크와 더불어 ‘세계 미술시장의 3대 아트페어’로 통한다. 서구와 아시아 곳곳에 거점 장터를 둔 아트바젤보다 규모는 작다. 하지만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즈워너, 메리앤굿맨, 리만머핀, 페이스 등 세계 시장을 이끌어온 영국계 명문 화랑들이 운영을 주도해 영미권 최고의 아트페어로 군림하고 있다. 2012년엔 뉴욕, 2019년 로스앤젤레스에 딸림 장터를 차렸고 아시아권 장터는 한국에 처음 개설됐다. 한국의 키아프는 2002년부터 화랑협회 주최로 해마다 열리고 있다. 협회는 이날 행사 기간과 전시부스 구성, 입장수익 배분 등 다른 세부 운영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추가 협의를 통해 순차적으로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 회장은 “코엑스에서 키아프와 프리즈를 각기 따로 운영하되 한 장의 입장권으로 두 장터를 함께 볼 수 있게 하도록 의견을 모았다”면서 “세계 최고 갤러리들이 미술품을 선보이는 만큼 서울이 세계 미술의 중심 무대로 주목 받게되고 국내 작가들의 국제무대 진출 기회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프리즈의 보드디렉터 빅토리아 시달도 협회에 전한 메시지에서 “서울은 훌륭한 작가와 갤러리, 미술관, 컬렉션이 있어 프리즈 개최에 완벽한 도시”라면서 “아시아에서 우리의 새로운 아트페어가 열리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리즈의 한국 진출로 지금까지 연간 총매출액이 5000억원대 정도였던 국내 미술 시장은 매출총액이 1~2조원대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 규모나 유통 구조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프리즈가 한국을 아시아 거점으로 택한만큼 국내 작가들의 작품과 화랑 시장이 세계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원문보기: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995767.html#csidxb0a9d529e93b71287e03c400290432b
2021.05.21
-
미술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
미술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 요즘 젊은이들이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품목은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 넷플릭스 정기 구독권만이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미술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II (Inspired by David Hockney), 2020, MADSAKI “제가 미술품 경매 업계에 처음 발을 들인 10여 년 전쯤, 다들 하던 얘기가 있었어요. 미술 시장이 커지려면 미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자본을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고. 아트 컬렉터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이 작품을 사야 한다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저도 그런 일들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트 컨설팅 컴퍼니 케이아티스츠 변지애 대표의 말이다. 그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팝 아티스트 매드사키 Madsaki의 한정판 프린트를 구하기 위해 어렵사리 약속을 잡고 찾아간 자리에서 백팩을 둘러메고 나온 앳된 얼굴의 20대 대학생을 만났다. “어쩌다 이걸 사게 되었냐고 물어봤더니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서 재미로 샀다더군요. 그런데 그게 불과 1~2년 만에 열 배 가까이 올라버린 거죠.” 다른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코로나19는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미술 시장의 변화를 누구도 생각지 못한 빠르기로 가속시켰다. 세계 최대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과 UBS 보험사가 지난 3월 발표한 ‘세계 미술 시장 보고서 The Global Art Market Report’ 2021년판에 따르면,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작년 미술 시장의 거래량은 22퍼센트 감소했지만 온라인 판매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비율로 따지면 전 세계 미술품의 25퍼센트 이상이 온라인을 통해 거래된 셈. 사상 최초로 온라인 거래가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매하는 비율(18퍼센트)을 넘어섰으며, 이러한 변화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들이 미술 작품 구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개 갤러리는 그 크기나 규모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대문을 밀고 들어가야 하는 공간이었다. 마치 아무나 들이지 않겠다는 명확하고 강렬한 의지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 같은 육중함. 주요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작품 옆에 가격을 표시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가격을 물어본 다음엔 그 질문의 진의를 되묻는 듯한 갤러리 직원의 자못 우아한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온라인과 모바일엔 무거운 대문도, 아래위로 훑어보는 갤러리 직원의 눈길도 없다. 작품마다 친절한 해설이 붙어 있고, 무엇보다 가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 거래된 가격을 토대로 미래의 투자 가치 예측도 가능하다. ‘히스콕스 온라인 미술 거래 보고서 Hiscox Online Art Trade Report’ 2020년판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미술품을 구매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87퍼센트가 가격과 과거 거래 내역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전 세계 아트 페어의 61퍼센트가 취소되었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행사를 대체하거나 제한된 관람객만 입장할 수 있었다. 주요 갤러리들은 웹사이트에 VR 쇼룸 등 첨단 기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 맞춰 가격 등 미술품 구매와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미술 & 공예 작품 거래 플랫폼인 아트시 artsy.net에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갤러리가 올려놓은 소속 작가의 작품과 거래 가격을 검색할 수 있다. 작가의 이름만 알면, 그의 작품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하는지 파악하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물론 ‘직구’도 가능하다. 미술 시장이 주요 거래 공간을 온라인으로 옮김에 따라 일어난 변화 중 하나는 앞서 소개한 매드사키의 예처럼 주요 작가가 제작한 한정판 프린트 가격의 수직 상승이다. 온라인으로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젊은 컬렉터의 80퍼센트 이상이 관심 있는 작가의 신작이나 새로운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는 주된 통로로 인스타그램을 꼽았다.(히스콕스 온라인 미술 거래 보고서.) 미술 잡지에서 인터뷰나 작가론, 전시 리뷰를 찾아보던 예전과 달리 지금 세대 컬렉터는 인스타그램에서 작가의 작업실과 아트 인플루언서의 집 사진, 명품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 제품 이미지 등을 통해 작가와 작품을 접한다. 좋아하는 작가를 팔로우하고, DM이나 댓글을 통해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유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작가들에게 컬렉터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최근 몇 년간 가장 빠른 속도로 가치가 오르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다니엘 아샴 Daniel Arsham은 디올과 포르쉐, 리모와 등 굵직한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거쳐 올해 NBA 구단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비주얼 전략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코로나19 이후의 아티스트는 아트 디렉터이자 브랜드 앰배서더,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한다. 아티스트와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여전히 주요 작가들의 기대작은 전속 갤러리 또는 딜러와 오랜 친분이 있는 극소수 컬렉터들에게 제작이 완료되기도 전에 팔린다. 작품과 제품 사이, 그 미묘한 경계에 예전엔 ‘판화’라 부르던 한정판 프린트가 자리한다. “모두에게 정보가 열려서 전에 비해 다양한 사람이 미술 작품을 구입하고 싶어 하지만 주목받는 작가의 수는 여전히 소수예요. 그러다 보니 속도가 중요해졌죠. 한정판 프린트를 사기 전에 직접 작품을 보고 싶다는 고객들에게 요즘엔 이렇게 말해요. ‘그럴 시간에 1백만원 올라요. 지금 사는 게 제일 싼 거예요.’” 변지애 대표는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하고 카우스 KAWS와 다니엘 아샴, 무라카미 타카시 Takashi Murakami 등 지금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의 특징은 직접 보든 화면을 통해 보든 큰 차이가 없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미술 시장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으로는 비교적 저렴한 신진 작가의 소품만 거래해온 관행도 코로나19와 함께 무너졌다. 유서 깊은 경매사 소더비가 작년 6월 사상 최초로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경매에서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1981년 작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로부터 영감을 받은 세폭 재단화’는 무려 8천4백60만 달러(한화 약 1천14억원)에 낙찰되었다. 소더비와 세계 경매 시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크리스티는 올 3월 디지털 파일 형태로 제작한 미술 작품을 암호화폐로 거래하는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 방식을 통해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 Beeple의 ‘에브리데이즈:첫 5000일’을 6천9백30만 달러(한화 약 7백85억원)에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 경매를 통해 디지털 아트 애호가 외에 아무도 모르던 비플은 데이비드 호크니와 제프 쿤즈에 이어 생존 작가 중 세 번째로 비싼 가격에 작품을 판매한 작가가 되었다. 젊은 세대는 대개 ‘작품’이 우선이던, 또는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이전 세대 컬렉터와 달리 투자와 수익을 통해 미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한정판 스니커즈로 시작해 디자이너 가구와 자동차, 시계 등 럭셔리 구매와 리세일을 통해 수집의 즐거움을 알게 된 후 아트 컬렉션을 시작하는 젊은 컬렉터도 많다. 변지애 대표에게 매드사키의 한정판 프린트를 판매한 대학생은 그 돈을 주식에 투자할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더 많이 벌어서 뭘 하려는 걸까. “더 좋은 작품을 사겠다던데요?” 그렇다면 대체 좋은 작품이 뭐냐고 되묻지는 않았다.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들은 취향과 안목, 그리고 투자를 애써 구분하지 않는다. 출처: GQ글: 정규영(콘텐츠 기획자) 이미지: www.artsy.net
2021.05.21
-
‘미린이’도 쉽게 하는 아트테크…MZ세대 공동 구매 급증
‘미린이’도 쉽게 하는 아트테크…MZ세대 공동 구매 급증 20대 직장인 최창민 씨는 요즘 주말이면 갤러리 투어에 열심이다. 어떤 작품이 유행하는지, 특히 각 갤러리마다 제일 잘 팔리는 작가와 작품은 뭔지 꼼꼼히 살핀다. 그리고 이 작품이 서울옥션 등 주류 옥션 혹은 미술 투자 플랫폼 ‘테사’ 등에서 거래가 됐는지도 따져본다. 그림 하나에 1억원 이상 하는 작품도 투자 대상에 올려놓는다. 목돈이 없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끼리 돈을 모아 소액 투자를 할 수 있게 하는 모바일 앱도 속속 등장해 구입이 예전처럼 어렵지는 않다. 아트테크가 뜬다. 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를 뜻하는 아트테크는 최근 IT 기술의 발달로 2030세대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변이 넓어지면서 거래액이 급증하는 등 관련 시장도 쑥쑥 성장하고 있다. 서울옥션은 연간 4회로 운영하던 정기 경매를 올해부터는 5회로 늘리기로 했을 정도다. 더불어 블록체인, NFT(대체 불가능 토큰) 등 신개념 투자 방법도 늘어났다. 아트테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또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 피카소 전시 구름 관중…2030 북적북적미술품 ‘공동 구매’…MZ세대 투자 ‘급증’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이 화제다. 휴일에는 지하층까지 오래 줄을 기다려야 겨우 볼 수 있고 주중에도 만만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전시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년)의 작품 110점을 볼 수 있는 국내 피카소전 사상 최대 규모다. 전시회 주최 측은 “2030세대의 미술관 나들이가 뚜렷하다. 교양 차원에서 접근하기도 하지만 질문하는 것을 보면 그림 가격, 국제 옥션 낙찰가 등 재테크 관련 내용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최근 미술 시장의 주요한 특징 중 한 가지는 아트테크의 대중화다. 당장 주요 옥션, 아트페어(박람회) 등에 초보 투자자 발걸음이 부쩍 늘었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최근 새로운 젊은 고객이 상당히 많이 방문하고 있다. 특히 벤처,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대규모로 매각한 기업가들의 방문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들 중 일부는 단숨에 ‘큰손’으로 떠오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IT 기술 고도화로 진입장벽을 낮춘 것도 컸다. 지난해 예술경영지원센터 자료에 따르면 미술품 경매 시장 매출에서 온라인 경매 시장은 2018년 상반기 105억원대였던 것이 2년 만인 지난해에는 123억원대로 늘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서울옥션을 예로 들면 지난해 해외 전시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온라인 경매 성장세가 뚜렷하다. 매년 20~25회 정도 이뤄지던 것이 올해는 40회 이상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평균 낙찰총액 규모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시장의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금융 업계에서도 이 시장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신한카드는 최근 ‘아트(Art)’ 사내벤처를 결성, ‘아트페어’를 개최하기로 했다. 신한카드가 스폰서십을 맺고 있는 한남동 소재 블루스퀘어 네모홀에서 6월에 3차례 진행하는 이 행사는 신진 작가·갤러리(화랑)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신한카드 브랜드 파워를 활용한 판매에도 나설 예정. 향후 소장품 직거래, 소장품·전시 정보를 공유하고 아트 플렉스 공간을 개설하는 등 관련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SK텔레콤과 하나금융지주가 합작 설립한 금융 플랫폼 ‘핀크’도 스타트업과 손잡고 ‘미술품 공동 구매’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8년 출범한 미술품 공동 구매 플랫폼 ‘아트투게더’는 소액 투자자를 모아 고가 미술품을 사서 차익을 남기고 되파는 크라우드펀딩 형태의 스타트업. 핀크는 아트투게더와 손잡고 지난해 5월부터 소액으로 펀딩에 참여할 수 있게 진입장벽을 낮췄다. 최소 펀딩 단위는 1주로 가격은 1만원에 공동 구매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카이로스인베스트먼트도 갤러리와 손잡고 미술품 투자 전문 펀드를 조성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블록체인 기술 발달에 따라 단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을 NFT 형태로 만들어 거래하기도 한다. MZ세대 ‘큰손’ 부상아트테크의 미래 밝아 MZ세대 유입으로 이 시장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세계 최대 규모 아트페어 주관사인 스위스 아트바젤은 ‘2021 미술 시장 보고서’에서 10개국 고액 자산가 컬렉터 2569명 중 52%가 2030세대라고 밝혔다. ‘오픈갤러리’ 등 미술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한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미술 시장 문턱이 점점 낮아지고 있고 젊은 고객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종전 갤러리, 경매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미술 거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아트테크에도 유의할 사안은 많다. ‘가짜 그림’ 즉 위작 논란은 늘 시장에서 변수다. 2011년 11월, 165년 역사를 자랑하던 미국 뉴욕의 유명 화랑 노들러 갤러리(Knoedler Gallery)가 미국 사상 최대 미술품 사기에 휘말려 문을 닫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이우환, 천경자 관련 작품은 위작 논란이 항상 따라다닌다. 아트테크도 결국 재테크의 일종인 만큼 ‘시장성’ ‘환금성’ 등도 철저히 따져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미술 시장이 뜬다기에 신진 작가 작품을 무턱대고 샀다가 되팔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일도 속출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신기술 영역인 NFT 관련 작품 구매에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여자친구이자 캐나다 유명 가수 그라임스의 NFT 작품이 65억원에 팔리며 큰 관심을 받았지만 자전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박수호·정다운·나건웅 기자]
2021.05.21
-
세계 3대 미술장터 ‘프리즈’ 내년부터 서울에도 펼친다
세계 3대 미술장터 ‘프리즈’ 내년부터 서울에도 펼친다 한국화랑협회-영국 프리즈페어 협약2022년 9월 한국 ‘키아프'와 공동개최 지난 2019년 한국화랑협회 주최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 전시장의 모습. 한국화랑협회 제공지난 2019년 영국의 프리즈 런던 전시장. 한국화랑협회 제공 한국화랑협회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영국의 미술품 장터(아트페어) ‘프리즈’(FRIEZE)의 아시아권 행사를 서울에 유치했다고 18일 공식발표했다. 황달성 회장은 이날 협회의 보도자료를 통해 내년 9월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관에서 영국 프리즈 페어와 공동으로 국제장터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KIAF)’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공동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최근 프리즈 이사회 관계자들과 모든 계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초대형 아트페어를 추진하기 위한 협의를 마쳤다고 덧붙였다. 프리즈는 2003년 런던에서 현대미술잡지 <프리즈>의 발행인인 어맨다 샤프와 매슈 슬로토버가 창설했다. 스위스 바젤에 본거지를 둔 세계 최대 미술품 장터인 아트바젤, 프랑스 파리의 피아크와 더불어 ‘세계 미술시장의 3대 아트페어’로 통한다. 서구와 아시아 곳곳에 거점 장터를 둔 아트바젤보다 규모는 작다. 하지만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즈워너, 메리앤굿맨, 리만머핀, 페이스 등 세계 시장을 이끌어온 영국계 명문 화랑들이 운영을 주도해 영미권 최고의 아트페어로 군림하고 있다. 2012년엔 뉴욕, 2019년 로스앤젤레스에 딸림 장터를 차렸고 아시아권 장터는 한국에 처음 개설됐다. 한국의 키아프는 2002년부터 화랑협회 주최로 해마다 열리고 있다. 협회는 이날 행사 기간과 전시부스 구성, 입장수익 배분 등 다른 세부 운영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추가 협의를 통해 순차적으로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황 회장은 “코엑스에서 키아프와 프리즈를 각기 따로 운영하되 한 장의 입장권으로 두 장터를 함께 볼 수 있게 하도록 의견을 모았다”면서 “세계 최고 갤러리들이 미술품을 선보이는 만큼 서울이 세계 미술의 중심 무대로 주목 받게되고 국내 작가들의 국제무대 진출 기회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프리즈의 보드디렉터 빅토리아 시달도 협회에 전한 메시지에서 “서울은 훌륭한 작가와 갤러리, 미술관, 컬렉션이 있어 프리즈 개최에 완벽한 도시”라면서 “아시아에서 우리의 새로운 아트페어가 열리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리즈의 한국 진출로 지금까지 연간 총매출액이 5000억원대 정도였던 국내 미술 시장은 매출총액이 1~2조원대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 규모나 유통 구조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프리즈가 한국을 아시아 거점으로 택한만큼 국내 작가들의 작품과 화랑 시장이 세계 미술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원문보기: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995767.html#csidxb0a9d529e93b71287e03c400290432b
2021.05.21
-
미술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
미술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 요즘 젊은이들이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품목은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 넷플릭스 정기 구독권만이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미술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II (Inspired by David Hockney), 2020, MADSAKI “제가 미술품 경매 업계에 처음 발을 들인 10여 년 전쯤, 다들 하던 얘기가 있었어요. 미술 시장이 커지려면 미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자본을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고. 아트 컬렉터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이 작품을 사야 한다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저도 그런 일들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트 컨설팅 컴퍼니 케이아티스츠 변지애 대표의 말이다. 그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팝 아티스트 매드사키 Madsaki의 한정판 프린트를 구하기 위해 어렵사리 약속을 잡고 찾아간 자리에서 백팩을 둘러메고 나온 앳된 얼굴의 20대 대학생을 만났다. “어쩌다 이걸 사게 되었냐고 물어봤더니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서 재미로 샀다더군요. 그런데 그게 불과 1~2년 만에 열 배 가까이 올라버린 거죠.” 다른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코로나19는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미술 시장의 변화를 누구도 생각지 못한 빠르기로 가속시켰다. 세계 최대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과 UBS 보험사가 지난 3월 발표한 ‘세계 미술 시장 보고서 The Global Art Market Report’ 2021년판에 따르면,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작년 미술 시장의 거래량은 22퍼센트 감소했지만 온라인 판매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비율로 따지면 전 세계 미술품의 25퍼센트 이상이 온라인을 통해 거래된 셈. 사상 최초로 온라인 거래가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매하는 비율(18퍼센트)을 넘어섰으며, 이러한 변화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들이 미술 작품 구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개 갤러리는 그 크기나 규모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대문을 밀고 들어가야 하는 공간이었다. 마치 아무나 들이지 않겠다는 명확하고 강렬한 의지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 같은 육중함. 주요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작품 옆에 가격을 표시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가격을 물어본 다음엔 그 질문의 진의를 되묻는 듯한 갤러리 직원의 자못 우아한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온라인과 모바일엔 무거운 대문도, 아래위로 훑어보는 갤러리 직원의 눈길도 없다. 작품마다 친절한 해설이 붙어 있고, 무엇보다 가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 거래된 가격을 토대로 미래의 투자 가치 예측도 가능하다. ‘히스콕스 온라인 미술 거래 보고서 Hiscox Online Art Trade Report’ 2020년판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미술품을 구매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87퍼센트가 가격과 과거 거래 내역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전 세계 아트 페어의 61퍼센트가 취소되었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행사를 대체하거나 제한된 관람객만 입장할 수 있었다. 주요 갤러리들은 웹사이트에 VR 쇼룸 등 첨단 기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 맞춰 가격 등 미술품 구매와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미술 & 공예 작품 거래 플랫폼인 아트시 artsy.net에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갤러리가 올려놓은 소속 작가의 작품과 거래 가격을 검색할 수 있다. 작가의 이름만 알면, 그의 작품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하는지 파악하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물론 ‘직구’도 가능하다. 미술 시장이 주요 거래 공간을 온라인으로 옮김에 따라 일어난 변화 중 하나는 앞서 소개한 매드사키의 예처럼 주요 작가가 제작한 한정판 프린트 가격의 수직 상승이다. 온라인으로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젊은 컬렉터의 80퍼센트 이상이 관심 있는 작가의 신작이나 새로운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는 주된 통로로 인스타그램을 꼽았다.(히스콕스 온라인 미술 거래 보고서.) 미술 잡지에서 인터뷰나 작가론, 전시 리뷰를 찾아보던 예전과 달리 지금 세대 컬렉터는 인스타그램에서 작가의 작업실과 아트 인플루언서의 집 사진, 명품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 제품 이미지 등을 통해 작가와 작품을 접한다. 좋아하는 작가를 팔로우하고, DM이나 댓글을 통해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유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작가들에게 컬렉터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최근 몇 년간 가장 빠른 속도로 가치가 오르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다니엘 아샴 Daniel Arsham은 디올과 포르쉐, 리모와 등 굵직한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거쳐 올해 NBA 구단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비주얼 전략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코로나19 이후의 아티스트는 아트 디렉터이자 브랜드 앰배서더,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한다. 아티스트와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여전히 주요 작가들의 기대작은 전속 갤러리 또는 딜러와 오랜 친분이 있는 극소수 컬렉터들에게 제작이 완료되기도 전에 팔린다. 작품과 제품 사이, 그 미묘한 경계에 예전엔 ‘판화’라 부르던 한정판 프린트가 자리한다. “모두에게 정보가 열려서 전에 비해 다양한 사람이 미술 작품을 구입하고 싶어 하지만 주목받는 작가의 수는 여전히 소수예요. 그러다 보니 속도가 중요해졌죠. 한정판 프린트를 사기 전에 직접 작품을 보고 싶다는 고객들에게 요즘엔 이렇게 말해요. ‘그럴 시간에 1백만원 올라요. 지금 사는 게 제일 싼 거예요.’” 변지애 대표는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하고 카우스 KAWS와 다니엘 아샴, 무라카미 타카시 Takashi Murakami 등 지금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의 특징은 직접 보든 화면을 통해 보든 큰 차이가 없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미술 시장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으로는 비교적 저렴한 신진 작가의 소품만 거래해온 관행도 코로나19와 함께 무너졌다. 유서 깊은 경매사 소더비가 작년 6월 사상 최초로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경매에서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1981년 작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로부터 영감을 받은 세폭 재단화’는 무려 8천4백60만 달러(한화 약 1천14억원)에 낙찰되었다. 소더비와 세계 경매 시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크리스티는 올 3월 디지털 파일 형태로 제작한 미술 작품을 암호화폐로 거래하는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 방식을 통해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 Beeple의 ‘에브리데이즈:첫 5000일’을 6천9백30만 달러(한화 약 7백85억원)에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 경매를 통해 디지털 아트 애호가 외에 아무도 모르던 비플은 데이비드 호크니와 제프 쿤즈에 이어 생존 작가 중 세 번째로 비싼 가격에 작품을 판매한 작가가 되었다. 젊은 세대는 대개 ‘작품’이 우선이던, 또는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이전 세대 컬렉터와 달리 투자와 수익을 통해 미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한정판 스니커즈로 시작해 디자이너 가구와 자동차, 시계 등 럭셔리 구매와 리세일을 통해 수집의 즐거움을 알게 된 후 아트 컬렉션을 시작하는 젊은 컬렉터도 많다. 변지애 대표에게 매드사키의 한정판 프린트를 판매한 대학생은 그 돈을 주식에 투자할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더 많이 벌어서 뭘 하려는 걸까. “더 좋은 작품을 사겠다던데요?” 그렇다면 대체 좋은 작품이 뭐냐고 되묻지는 않았다.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들은 취향과 안목, 그리고 투자를 애써 구분하지 않는다. 출처: GQ글: 정규영(콘텐츠 기획자) 이미지: www.artsy.net
2021.05.21